조선시대의 파평윤씨의 행적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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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주 댓글 0 조회 9,719 작성일 06-01-24 14:19본문
어떤 원로님이 본 조선시대의 본 문중의 진단
우리 파평윤문의 주축은 서인계의 소론입니다.(특히 소정공의 장령공계와 일부 남원파)
하지만 우리파평윤문의 모든 문중이 소론 가문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판도공파와 남원파는 남인계열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소정공의 배천공계는 서인-노론계가 주축을 이루었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 파평윤문이 분열된 건 아니었나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이러한 점이 우리 파평윤문을 조선조 최고의 성씨로 만든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남인으로만 구성된 양천허씨, 북인으로 구성된 광주이씨 등은 당파가 몰락하자 가문역시 쇠하게 되어 다시는 조선조에서 부흥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초중기에는 판도공과 태위공파, 소정공 영천부원군파를 중심으로 흥하였고, 중기 이후에는 소정공파와 남원파를 중심으로 다시 흥하게 됩니다.
이는 조선 성종기에서 중종기를 보면 여실하게 잘 들어납니다. 성종의 계비는 그 유명한 폐비 윤씨(함안파 ; 당시에는 함안 윤씨, 현재는 파평윤문으로 합본) 입니다. 그 때 함안파와 남원파가 몰락 아닌 몰락을 하게 되죠. 폐비 윤씨 이후로 중전이 된 분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바로 소정공파의 출신의 정현왕후(정현왕후와 성종의 합장 릉이 바로 선릉입니다.)입니다. 함안파가 몰락했지만 소정공파의 버티고 있었죠.
중종기는 또 어떻습니까? 중종의 계비는 판도공파 출신의 장경왕후입니다. 인종을 생산하신지 이레만에 돌아가시져... 그 다음으로 왕비에 오르신 분이 바로 그 유명한 문정왕후입니다. 문정왕후와 장경왕후는 9촌간입니다. 중종은 아줌마와 질녀 관계에 있는 부인을 두었던 것입니다. 문정왕후가 왕비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소정공파 출신의 정현왕후(중종의 어머니)와 속칭 대윤이라 불리는 윤임의 가문(판도공-정정공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정왕후 사후에 판도공파가 몰락하자... 이제는 소정공의 장령공계가 흥하게 되죠... 속칭 노성윤씨로 불리는 장령공계는 조선 중기 이후 우리 파평윤문의 대표 가문으로 성장하여 파평윤문을 이끌게 되죠.
게다가 남원파까지 부흥하며 우리 파평윤문을 입지를 강건히 하게되죠.
또한 우리의 입지을 강건히 해준 가문이 있으니... 그건 바로 非파평윤씨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씨는 파평윤씨 밖에 없다'라고 알고 있죠. 즉 해평윤씨, 해남윤씨, 무송윤씨, 칠원윤씨, 영천윤씨 등의 非파평윤씨 중에서 인물이 나도 뭇 사람들은 그를 우리 파평윤문의 인물로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윤선도, 윤두서는 해남윤씨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 해남윤씨로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파평윤씨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요... ㅎㅎㅎ
해평윤씨는 윤보선, 윤치호 등이 근세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들 역시를 우리 파평윤문으로 세상 사람들은 생각할 겁니다. 예전에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져... 친구들에게 우리 성씨에서도 어서 대통령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친구들이 하는 말은 바로... 윤보선 있잖아...였습니다. 웃기죠...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명성이 올라가니 말입니다.(신기하게도 해평윤씨, 해남윤씨, 무송윤씨 등 非파평윤씨 출신의 뛰어난 인물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인구 비례로 따진다면 김, 이, 박, 최씨 보다도 인구는 휠씬 적지만 뛰어난 인물들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 파평윤문의 내외적 효과로 인해 최고의 명벌, 명문으로 칭송되어져 왔고, 오늘날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계신 종인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각자 모두 최선을 다할 때 우리 파평윤문은 만년 아니 억년토록 정상에 계속 서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화이팅^^
본 문중의 조상님들 자료를 수집 하느라고 여기 저기를 다니며 원로님들의 어록도 수집 하던 차에 조선시대를 통 틀어 평가하신것이 함축성이 있다 생각되어 올려 봤슴니다
다음기회에또 좋은 자료를 입수 하면 소개를 하갰슴니다
모든 문중 종인 여러분 건강 하시고 좋은 하루 되시길
울산소정문중 청년회장 34세손 璇 柱
우리 파평윤문의 주축은 서인계의 소론입니다.(특히 소정공의 장령공계와 일부 남원파)
하지만 우리파평윤문의 모든 문중이 소론 가문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판도공파와 남원파는 남인계열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소정공의 배천공계는 서인-노론계가 주축을 이루었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 파평윤문이 분열된 건 아니었나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이러한 점이 우리 파평윤문을 조선조 최고의 성씨로 만든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남인으로만 구성된 양천허씨, 북인으로 구성된 광주이씨 등은 당파가 몰락하자 가문역시 쇠하게 되어 다시는 조선조에서 부흥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초중기에는 판도공과 태위공파, 소정공 영천부원군파를 중심으로 흥하였고, 중기 이후에는 소정공파와 남원파를 중심으로 다시 흥하게 됩니다.
이는 조선 성종기에서 중종기를 보면 여실하게 잘 들어납니다. 성종의 계비는 그 유명한 폐비 윤씨(함안파 ; 당시에는 함안 윤씨, 현재는 파평윤문으로 합본) 입니다. 그 때 함안파와 남원파가 몰락 아닌 몰락을 하게 되죠. 폐비 윤씨 이후로 중전이 된 분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바로 소정공파의 출신의 정현왕후(정현왕후와 성종의 합장 릉이 바로 선릉입니다.)입니다. 함안파가 몰락했지만 소정공파의 버티고 있었죠.
중종기는 또 어떻습니까? 중종의 계비는 판도공파 출신의 장경왕후입니다. 인종을 생산하신지 이레만에 돌아가시져... 그 다음으로 왕비에 오르신 분이 바로 그 유명한 문정왕후입니다. 문정왕후와 장경왕후는 9촌간입니다. 중종은 아줌마와 질녀 관계에 있는 부인을 두었던 것입니다. 문정왕후가 왕비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소정공파 출신의 정현왕후(중종의 어머니)와 속칭 대윤이라 불리는 윤임의 가문(판도공-정정공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정왕후 사후에 판도공파가 몰락하자... 이제는 소정공의 장령공계가 흥하게 되죠... 속칭 노성윤씨로 불리는 장령공계는 조선 중기 이후 우리 파평윤문의 대표 가문으로 성장하여 파평윤문을 이끌게 되죠.
게다가 남원파까지 부흥하며 우리 파평윤문을 입지를 강건히 하게되죠.
또한 우리의 입지을 강건히 해준 가문이 있으니... 그건 바로 非파평윤씨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씨는 파평윤씨 밖에 없다'라고 알고 있죠. 즉 해평윤씨, 해남윤씨, 무송윤씨, 칠원윤씨, 영천윤씨 등의 非파평윤씨 중에서 인물이 나도 뭇 사람들은 그를 우리 파평윤문의 인물로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윤선도, 윤두서는 해남윤씨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 해남윤씨로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파평윤씨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요... ㅎㅎㅎ
해평윤씨는 윤보선, 윤치호 등이 근세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들 역시를 우리 파평윤문으로 세상 사람들은 생각할 겁니다. 예전에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져... 친구들에게 우리 성씨에서도 어서 대통령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친구들이 하는 말은 바로... 윤보선 있잖아...였습니다. 웃기죠...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명성이 올라가니 말입니다.(신기하게도 해평윤씨, 해남윤씨, 무송윤씨 등 非파평윤씨 출신의 뛰어난 인물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인구 비례로 따진다면 김, 이, 박, 최씨 보다도 인구는 휠씬 적지만 뛰어난 인물들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 파평윤문의 내외적 효과로 인해 최고의 명벌, 명문으로 칭송되어져 왔고, 오늘날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계신 종인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각자 모두 최선을 다할 때 우리 파평윤문은 만년 아니 억년토록 정상에 계속 서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화이팅^^
본 문중의 조상님들 자료를 수집 하느라고 여기 저기를 다니며 원로님들의 어록도 수집 하던 차에 조선시대를 통 틀어 평가하신것이 함축성이 있다 생각되어 올려 봤슴니다
다음기회에또 좋은 자료를 입수 하면 소개를 하갰슴니다
모든 문중 종인 여러분 건강 하시고 좋은 하루 되시길
울산소정문중 청년회장 34세손 璇 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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