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坡平尹氏 昭靖公派蔚山 蘇亭門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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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문중의 수목장(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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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종권 조회 2,690 작성일 09-06-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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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광산 김씨 문중의 수목장





  • 입력 : 2009.06.23 22:33

조선왕조 500년 동안 내로라하는 문중이 많았지만 집안마다 특징이 있었다. 전주 이씨와 동래 정씨, 청송 심씨, 청주 한씨는 정승을 10명 이상 냈고, 안동 권씨, 남양 홍씨, 파평 윤씨는 문과 급제자를 가장 많이 낸 집안이다. 연안 이씨는 정승 8명, 문과급제자 250명, 청백리 6명으로 각 분야에서 인물을 두루 많이 배출해 '삼한(三韓)의 갑족(甲族)'으로 꼽힌다. 한창때 안동 김씨는 '금관자·옥관자가 서말'이라고 했다. 정3품 당상관 이상만 망건에 붙이는 금·옥관자가 서말이나 될 만큼 고위 관리를 많이 배출했다는 뜻이다.

▶이런 문벌 리스트 중에서도 광산(光山) 김씨는 독특한 위상을 자랑한다. 정승은 5명을 냈으니 10위 안에도 못 낀다. 문과급제는 265명으로 6위에 그친다. 왕비도 1명밖에 못 냈으니 다른 외척 집안에 비해 크게 내세울 게 없다. 그래도 조선시대 최고 양반 가문을 꼽으라면 단연 앞 손가락에 오는 게 광산 김씨다. 문신(文臣)의 최고 영예 대제학이 7명으로 가장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광산 김씨의 영광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이가 선조~인조 때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그는 율곡의 학통을 이어받아 예학(禮學)을 집대성, 조선 후기 예(禮)와 풍속의 지침을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를 두고 "고금의 예설(禮說)을 찾아내 분명히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했다"고 했다. 사계 이후 '광김(光金)' 집안에서 3대 내리 대제학이 탄생했다.



경북 안동에 선산을 둔 광산 김씨 도봉공파 집안이 28일부터 모든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산소를 만들지 않고 화장해 선산 주변 나무에 뿌리겠다는 것이다. 수목장이 확산되고는 있다지만 문중 차원에서 수목장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우리나라 묘지 넓이가 평균 19평이라고 한다. 한 사람 주거면적이 4.3평이라니 죽어서 차지하는 땅이 살아서의 4배를 넘는다. 과거엔 양반이라는 집안일수록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고 묏자리를 크고 화려하게 썼다. 도봉공파는 사계의 직계 집안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 예학의 종장(宗匠)을 배출한 집안의 일원이 새로운 시대 추세에 맞춰 간소하고 친환경적인 장례방식을 먼저 실천하겠다고 나서 뜻깊다. 사계도 "예의 본질은 변치 않지만 예의 형식은 시간과 장소, 대상에 따라 변한다"고 했으니 이 시대의 수목장을 굳이 반대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