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학당"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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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주성 조회 2,736 작성일 09-04-04 14:03본문
충남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종학당은 파평윤씨 노종파의 문중서당으로 명재 윤증의 부친인 윤선거가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을 합숙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교육기관으로 논산에 뿌리 내린 파평윤씨 노종파가 조선 후기에 명문가문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종학당에서의 문중교육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학당에서 공부하고 대과에 합격한 인물이 모두 47명이라고 하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학당 종학당이라고 부르는 문중서당은 가장 아래쪽에 있는 사진에 보이는 종학당과 위에 있는
정수루와 백록당을 합쳐 부르는 이름입니다.
종학당 이곳은 파평윤씨 노종파의 어린 자제들이 들어와서 공부하던 곳으로 이곳에서 초보적인 교육을 하고 학문에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은 백록당으로 옮겨 공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조선 후기부터 수준별 교육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학당은 화재로 불 탄 것을 윤순거의 5대 손인 윤정규가 다시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 한 칸은 대청을 겸한 통마루이고 양쪽 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종학당 현판
종학당을 지나 낮은 언덕을 오르면 솟을삼문이 보이고 솟을삼문 안에는 누각인 정수루와 또다른 강학건물인 백록당이 있습니다.
종학당 내 솟을삼문
아래 연못에서 바라본 정수루와 백록당의 모습 정수루 누마루에 앉으면 눈 앞으로 병사저수지가 보이고 병사저수지 건너편에는 파평윤씨 노종파의 묘역이 한 눈에 보이는 곳입니다.
조상의 묘들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 문중의 젊은 선비들이 학문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종학당 정수루와 백록당
종학당 정수루 정수루는 누각으로 정수루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 덥던 날이 이곳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으로 인해 땀이 씻기고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종학당 정수루 내부의 모습입니다. 흡사 구조가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연상케 합니다. 만대루보다는 규모는 작았지만 누각의 구조나 형태가 거의 만대루와 같았습니다.
종학당 백록당 아래 종학당에서 초보학습을 마친 문중 젊은 선비들 중에서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을 가려뽑아 교육시키던 공간이 백록당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공부한 선비들 중에서 대과 합격자가 47명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을 동안 과거 합격자가 만오천 명정도라고 합니다. 짧은 시기에 한 집안에서 사십 명이 넘는 대과합격자를 낸 것은 경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수루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은 장방형으로 네모지고 연못 안에 작은섬은 원형입니다. 본래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하관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해설하시는 분의 이야기로는 정수루가 철없는 젊은이들에 의해 불탄 적이 있는데, 다시 지으면서 방화수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 연못을 조성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신 것같습니다.
종학당에서 공부하고 대과에 합격한 인물이 모두 47명이라고 하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학당 종학당이라고 부르는 문중서당은 가장 아래쪽에 있는 사진에 보이는 종학당과 위에 있는
정수루와 백록당을 합쳐 부르는 이름입니다.
종학당 이곳은 파평윤씨 노종파의 어린 자제들이 들어와서 공부하던 곳으로 이곳에서 초보적인 교육을 하고 학문에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은 백록당으로 옮겨 공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조선 후기부터 수준별 교육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학당은 화재로 불 탄 것을 윤순거의 5대 손인 윤정규가 다시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 한 칸은 대청을 겸한 통마루이고 양쪽 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종학당 현판
종학당을 지나 낮은 언덕을 오르면 솟을삼문이 보이고 솟을삼문 안에는 누각인 정수루와 또다른 강학건물인 백록당이 있습니다.
종학당 내 솟을삼문
아래 연못에서 바라본 정수루와 백록당의 모습 정수루 누마루에 앉으면 눈 앞으로 병사저수지가 보이고 병사저수지 건너편에는 파평윤씨 노종파의 묘역이 한 눈에 보이는 곳입니다.
조상의 묘들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 문중의 젊은 선비들이 학문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종학당 정수루와 백록당
종학당 정수루 정수루는 누각으로 정수루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 덥던 날이 이곳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으로 인해 땀이 씻기고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종학당 정수루 내부의 모습입니다. 흡사 구조가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연상케 합니다. 만대루보다는 규모는 작았지만 누각의 구조나 형태가 거의 만대루와 같았습니다.
종학당 백록당 아래 종학당에서 초보학습을 마친 문중 젊은 선비들 중에서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을 가려뽑아 교육시키던 공간이 백록당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공부한 선비들 중에서 대과 합격자가 47명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을 동안 과거 합격자가 만오천 명정도라고 합니다. 짧은 시기에 한 집안에서 사십 명이 넘는 대과합격자를 낸 것은 경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수루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은 장방형으로 네모지고 연못 안에 작은섬은 원형입니다. 본래부터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하관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해설하시는 분의 이야기로는 정수루가 철없는 젊은이들에 의해 불탄 적이 있는데, 다시 지으면서 방화수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 연못을 조성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신 것같습니다.
종학당 백록당
아래 종학당에서 초보학습을 마친 문중 젊은 선비들 중에서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을 가려뽑아 교육시키던 공간이 백록당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공부한 선비들 중에서 대과 합격자가 47명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을 동안 과거 합격자가 만오천 명정도라고 합니다. 짧은 시기에 한 집안에서 사십 명이 넘는 대과합격자를 낸 것은 경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학당 정수루에서 내려다본 종학당 건물과 병사저수지 사진에 보이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편안한 곳입니다. 특히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곳이 파평윤씨 노종파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젊은 선비들은 문중의 묘가 보이는 이곳에서 가문의 영광을 위해 이를 악물고 학업에 매진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종학당 앞에서 바라본 병사저수지와 노종파 묘역
종학당 정수루에서 내려다본 종학당 건물과 병사저수지 사진에 보이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편안한 곳입니다. 특히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곳이 파평윤씨 노종파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젊은 선비들은 문중의 묘가 보이는 이곳에서 가문의 영광을 위해 이를 악물고 학업에 매진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종학당 앞에서 바라본 병사저수지와 노종파 묘역